저는 개발자 성열(@yeol.devv)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합니다. 계정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인스타에 아래와 같은 스토리를 올렸습니다.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해보기 전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살펴봅시다.
개발자 성열은 본래 개발 공부 기록용으로 시작했습니다. TIL(Today I Learned)이라고 매일 공부한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저는 좀 더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인스타에 사진으로 공부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열심히 기록하다보면 인스타 계정도 나름의 개발자 포트폴리오로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아카이브 메뉴에서 캡쳐해온 당시의 컨텐츠들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개발 관련 정보를 꽉꽉 담은 컨텐츠들로 이루어져있어요. 예를 들어 위키피디아의 glossary of computer science를 보며 알파벳순으로 컴퓨터공학 용어를 공부하거나, 클린 코드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식이었습니다.
가끔 인스타툰 형식도 도전해봤습니다. 2023년 초에 복학하고 학교 구석에서 아이패드로 그림그리던게 생각나네요… 인스타툰 욕심은 항상 있어왔지만 허접한 그림임에도 엄청난 시간이 들어 손이 잘 안가네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 펜은 시험 때만 잡아본 저라 죄송합니다.
인스타툰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계정 제1의 목적이 저 스스로의 공부였기에 좋아요나 댓글같은 지표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기계적으로 공부하고 공유했습니다. 포스팅이 습관이 되다보니 포스팅을 위해 공부하는 좋은 영향이 있기도 했네요.
다만 2023년 중순부터는 위 사진처럼 퀴즈같은 포맷을 시도하면서 참여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도 했습니다.
2023년 하반기에는 컴공 복수전공 + 취준 + 인턴 이슈로 인스타 활동이 뜸해집니다.
인턴 전환에 성공해 2024년 상반기에는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취준을 한 덕에 공부 기록이란 초기의 목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졌고 이런저런 시도를 합니다.
위 사진에서 여러 시도들의 예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카테고리별로 정리해볼게요.
| 개발 밈 | 개발 팁 | 개발 밈 |
| 개발 팁 | 개발 썰 | 개발 썰 |
밈, 팁, 썰 3가지의 카테고리로 컨텐츠를 나눈게 보이시나요? 당시의 저는 새로운 포맷들을 시도해보며 컨텐츠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각각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경험했습니다.
재미 위주의 밈, 정보 전달 위주의 팁, 저 개인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썰 이렇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눴습니다. 모두 한 글자인게 마음에 들었어요. 대부분의 컨텐츠는 이 셋 중 하나, 혹은 이들의 조합으로 표현하고 분석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밈 컨텐츠는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만 팔로우를 비교적 적게 하는 반면, 썰이나 팁 컨텐츠는 조회수가 비교적 적은데 비해 팔로우 비율이 높음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도달율이나 전환율, 퍼널 같은 개념을 붙인건 최근에 들어서입니다.
2024년 초 이맘때쯤 동아리 슬랙에 올린 홍보 메시지를 보면 6,432 팔로워의 계정이었네요. 소개글에서도 개발 일상(썰), 개발 지식(팁), 개발 유머(밈)를 다룬다고 써있습니다.
2024년 초반, 바야흐로 대-개발밈의 시대에 접어듭니다.
이 엄청난 지표가 보이시나요? 인스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는지 당시에 제가 올리던 개발 밈 릴스들은 해외에도 도달했습니다. 외국인분들이 더 많이 팔로우해주셨지요. 한글 댓글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즈음에 만 명대 팔로워의 계정으로 성장했습니다.
위 사진처럼 유명 밈들을 개발 맥락으로 재해석하는 컨텐츠를 주로 업로드했습니다. 몇몇은 지금 릴스탭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전략의 밈 컨텐츠에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음을 곧 깨닫게 됩니다.
https://www.reddit.com/r/ProgrammerHumor/comments/b2398x/
위 사진은 외국의 개발밈 커뮤니티인 r/ProgrammerHumor에서 찾았습니다. 비슷한 밈이 너무 자주 올라오는 것에 대한 반감을 스타터팩이란 포맷으로 드러낸 것이지요. 개발자는 0부터 수를 센다, vim 닫는 법을 모르겠다같이 비슷한 주제의 밈이 너무 자주 올라오니 이에 대한 피곤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저처럼 컨텐츠를 올리기 위해 많은 밈을 접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늘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야하는 저에게는 해결해야할 이슈입니다. 개발 밈 컨텐츠를 올리며 널리 알려지고 보장된 밈 포맷은 생각보다 한정되어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대책을 찾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재미없는 억지 밈을 만들게될 수도 있고요. 초반에 유명한 밈을 활용해 좋은 지표를 얻지만, 이후 소재가 소진되어 지표가 하락하는 패턴은 다른 밈 계정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밈 의존적인 컨텐츠는 외부 소스에 의존하기에 제 정체성을 넣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힙플밈은 이 관점에서 배울 것이 많은 계정인데요, ‘해외 밈 번역’이라는 뻔하디 뻔해질 수 있는 소재에 디테일(재밌는 번역, 정확한 환율..)을 통해 정체성을 잘 녹여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당시 저를 가장 괴롭힌 질문은 ‘양산형 밈 계정과의 차이점이 무엇이냐’입니다. 만약 해외 개발 밈을 단순 번역해서 업로드하는 계정이라면 저보다 AI가 훨씬 더 잘할 것입니다. 지금쯤 게시물 몇 천개는 올라왔겠지요. 하지만 제 이름이 들어간 계정인데 이런 식의 운영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나만 만들 수 있는 개발 밈은 뭘까’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합니다.
이 고민에 대한 답은 아직도 만들어가는 중이지만, 종종 DM으로 ‘성열님 밈은 다르다’는 피드백을 듣는 것을 보면 무언가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만들 수 있는 컨텐츠가 무엇일까’에 대해 계속 고민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밈보다는 팁이, 팁보다는 썰이 정체성을 담기에 올바른 포맷이라고 판단합니다. 이에 다시 이것저것 도전합니다. 밈과 함께 팁과 썰도 올리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개발과는 하등 상관없는 hiiihorse같은 계정을 참고해 이미지 모음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아래 사진의 2번째 게시물처럼요.
이미 재미있는 소스를 활용해 만든 밈 컨텐츠는 보장된 재미가 있습니다. 성공한 원작 기반 드라마의 느낌일까요. 하지만 제가 직접 만든 컨텐츠는 정말 재미없을 수도 있음을 가슴아프게 느끼는 기간이었습니다. 컨텐츠간의 편차가 큽니다.
컨텐츠 몇 가지를 발굴했습니다.


제가 개발 이야기뿐만 아니라 UI/UX 관련된 이야기도 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디자이너 분들이 점점 많이 찾아오십니다.
팁인척 팁 아닌걸 올리는 거~짓말하는 컨텐츠가 재밌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포맷을 쓰면 과한 후킹과 함께 오바쌈바를 떨어도 죄책감이 없어 좋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잘못된 내용이라는걸 드러내기도하고요.
결국 양치기소년이 된 저는 청첩장 사진을 올리고도 거짓말 아니냐고 의심받게 됩니다.
계정의 역사를 모두 돌아봤으니 다시 처음의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개발자 성열은 뭐하는 계정일까요?
이를 왜 정해야하는지 궁금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냥 하던대로 제 맘대로 올리면 안되는걸까요? 실제로 스토리에 이런 답변도 많이 들어왔는데, 계정 방향성을 확 바꿔버릴거란 두려움을 드린 것 같기도 해서 죄송하네요.
이 계정은 저 개인과 꽤나 많이 엮여있습니다. 저한테 재밌고, 제가 관심가지고 있는 것들을 공유하다보니 운좋게 여러 사람들이 모여주셨지요. 하지만 이 방식에는 컨텐츠를 보는 사람의 입장이 고려되어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요!
이는 역설적으로 컨텐츠를 올리는 저도 어렵게합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알기 어렵기에 계정 운영의 동기부여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도움을 이미 드리고 있다고해도요.
또한 계정의 정체성은 계정의 성장에 있어서도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입니다. 서비스는 사용자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약속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읽는 마케팅 책에서는 아래처럼 언급했습니다.
마케터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항상 약속의 형식을 지닌다. ‘X를 하면 Y를 얻는다.‘는 식이다.
‘개발자 성열’ 계정을 팔로우하면 어떤 것을 얻을까요? 사람들이 제 프로필을 보고, 혹은 컨텐츠를 보고 제가 어떤 약속을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조차 무슨 약속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말이죠.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께서 답변해주셨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모든 답변을 여기 소개드리고싶지만, 글의 주제에 맞게 제 계정에서 어떤 가치를 얻고 계신지에 대한 각자의 개인적인 이유 위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아래 답변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정체성은 개발자 계정인거지, 개그계정 혹은 정보계정이 아니니 편하게 하셔요!!
UI/UX 관련된 언급이 생각보다 많아서 기억에 남네요. UI/UX 안티패턴을 다루는 게시물도 그렇고 ‘이상한 UI/UX 만들어드립니다’같은 참여할 수 있는 컨텐츠에 대해서도 더 고심해봐야겠습니다.
답변들을 보며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지금껏 제 계정의 가치에 대해 추상적으로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있었는데 다양한 관점에서 써주신 글들을 통해 보다 구체화할 수 있었어요. 제가 무언갈 드리고 있다는 확신도 생겼고요.
계정의 방향을 바꾼다기보다는 지금 드리고 있는 것들을 잘 정리하면 되겠습니다. 밖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바꾸기보단, 제가 더 확신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계정 역사를 돌아보고 답변들을 읽다보니 시간이 늦었네요. 여기서 얻은 인사이트는 머릿속에 담아두고 컨텐츠에 / 계정 운영에 계속 적용시켜나가보겠습니다. 우선은 요일을 정해 컨텐츠를 주기적으로 올릴까합니다. 월요일은 밈, 금요일은 팁 이런 식으로요. 어떤 계정인지 보여주는데 더 용이할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답변해주신 분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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