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열 Seongyeol Yi

먼저 온 미래를 읽고

26.02

책 표지

‘먼저 온 미래’는 알파고 이후 바둑계의 변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저자는 프로기사들을 인터뷰하고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를 통해 다른 분야에 닥칠 변화를 전망합니다.

소설가인 저자는 소설 쓰는 AI가 나오면 소설가라는 직업이 어떻게 될지 고민합니다. 그렇다면 AI도 좋은 코드를 짠다면 인간 개발자의 역할은 뭘까요. 아름다운 코드를 짜는 걸 가치로 여기는 개발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책을 읽으며 느낀 점들을 짧은 호흡으로 기록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장인정신

클린 코드로 유명한 로버트 마틴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장인정신으로 바라봅니다. 바둑 기사들이 바둑은 예술이라 믿었듯, 코드는 예술라는 믿음으로 개발하는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암묵지의 균열

암묵지는 지식의 한 종류로서, 언어 등의 형식을 갖추어 표현될 수 없는, 경험과 학습에 의해 몸에 쌓인 지식이다. 위키피디아

인간만의 것이라 여겨졌던 암묵지에 AI가 들어오면서 가치 체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암묵지는 많은 인간 전문가에게 단순히 그들이 보유한 지식 상품이 아니라, 아 자기효능감과 자부심, 자존감의 근원이기도 하다.

달라진 작업 방식

개발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무에서 시작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AI가 만든 걸 첨삭하거나 수정합니다. 지금은 제가 AI의 결과물을 다듬어줘야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면? 단순 요구사항을 구현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개발자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창의성의 재정의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게 창의성이든 문학성이든 뭐든 간에, 그걸 인간만 가질 수 있다고 말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알파고가 주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좋은 코드를 인간만 짤 수 있다고 말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평가의 스펙트럼

바둑은 승패라는 절대 기준이 있어서 AI가 “더 잘한다”는 게 반박 불가능했습니다. 좋은 코드는 비교적 평가하기 용이합니다. 테스트, 성능, 가독성으로 측정할 수 있으니까요. 좋은 소설의 기준은 암묵지에 비교적 더 의존합니다.

제 생각에 바둑 —> 코드 —> 소설 순으로 평가가 명확합니다. 바둑은 승리가 목표라고 할 수 있고, 코드는 돌아가는지 여부는 명확하지만 좋은 코드란 비교적 주관적이며, 소설은 무엇이 좋은 소설인지조차 개개인이 다르게 말합니다. 평가가 쉬운 쪽이 AI에 더 빨리 뚫리는 걸까요. 바둑이 먼저 무너졌고, 코드도 따라가고 있습니다.

맥락도 학습 가능하다

코드는 바둑보다 기준이 모호하니 AI가 대체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하지만 좋은 코드의 기준이 맥락에 따라 다르더라도, 그 맥락을 컨텍스트에 넣으면 AI가 잘할 수 있습니다. 회의 내용이나 의사결정 레거시를 잘 관리할 수 있다면 유지보수 좋은 코드도 AI의 영역이 됩니다.

언어의 균열

언어는 도구다. 그 도구에 기대지 않는 인공지능이 언어라는 도구에 기대야만 하는 인간들보다 더 훌륭하게 과제들을 수행할 때, 언어에는 균열이 생긴다.

AI에게 글을 쓰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비슷한 글을 입력으로 넣는 게 낫습니다. 언어는 근사치일 뿐이고, 예시가 더 정확한 명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AI끼리의 소통한다면 인간의 언어의 한계를 넘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내용들도 더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까요?

좋은 예제가 경쟁력

인스타 콘텐츠 초안을 AI로 종종 작성하는데, 좋은 예제를 많이 만들어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좋은 예제가 쌓일수록 AI에게 더 정확한 명세를 줄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알아보는 미감, 그리고 그걸 예시로 축적하는 것이 AI 시대의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감이라는 간극

누군가 제 인스타 게시물을 퍼가 AI로 영상화한 적이 있습니다. 질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할 수 있다”와 “좋은 결과물을 낸다” 사이에는 간극이 있고, 그걸 판단하는 것이 미감입니다. 바이브 코딩으로 대충 만든 서비스와 콘텐츠가 넘칩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드냐보다 뭘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모욕당한 신성함

ChatGPT로 지브리 스타일 프사를 만드는 게 유행했습니다. 거부감이 드는 사람을 이해합니다. 그림체는 누군가의 자산인데 따라하기가 너무 쉬워졌으니까요. 어떤 웹툰 작가 인스타에서 “AI 쓴 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라는 댓글을 본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내게는 사람들이 자기 부족의 중요한 토템을 모욕당해 화를 내는 원주민처럼 보였다.

AI가 쓴 보고서와 AI가 그린 그림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요? “인간적 창작”이라는 신성함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일본도의 비유

일본도 같은 칼로 요리를 할 수는 없다. 과연 쓰는 사람이 기술의 용도를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도의 용도는 일본도를 만든 장인이 거의 정한 것 아닐까? 우리는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는 헛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도구가 우리를 바꾸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우리가 도구를 선택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항성 없는 개발자

근미래 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의 소중한 가치들을 훼손하는 것은 내게 당대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저는 기술에 저항성이 크게 없습니다. 새 기술이 나오면 써보고 편하면 받아들입니다. 반면 저자는 가치의 훼손을 민감하게 느끼는데 기술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기술이 바꾸는 가치를 인식하기 어려운걸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체에서 보조 인력으로

소설을 쓸 때 나는 내가 주체적으로 일한다는 사실이 좋다. (…) 결과물의 질이 뛰어나더라도 내가 주체가 아니라 보조 인력이라고 느낀다면 나는 ‘내 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서사가 가치의 기준

탁월함을 첫 번째 목표로 추구하지 않을 때 예술은 무엇이 될까?

알파고라는 절대적인 실력의 존재가 등장하고 나서 바둑 시장에서는 실력보다 스토리가 더 중요해졌다고 합니다.

서사가 가치의 중심이 되는 세상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한번 유명해지면 탁월하지 않은 결과물로도 지지를 얻습니다. 모두가 마케터가 되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끝없는 추격전

책에서 저자는 AI에게 대중성을 가르쳐 베스트셀러를 찍어내는 상상을 합니다. 사진이 등장했을 때 회화가 인상주의, 추상으로 간 것처럼 인간은 더 독특한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AI는 그 방향도 다시 학습합니다. 사진과 달리 AI는 도망친 곳까지 따라옵니다.

흔들리지 않는 법

나는 AI 시대가 공허의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한다. 평범한 인간들이 가치를 잃어버리고, 가치로부터 소외되는.